왕으로서 정치가로서 세종의 위대함을 부인하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문자인 훈민정음의 창제를 비롯하여, 백성들을 위한 『농사직설』, 『향약집성방』 등의 농서와 의서 간행,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발탁과 해시계・자격루・측우기 등의 각종 과학기구들의 발명, 박연으로 대표되는 궁중 음악의 완성 등 세종대의 찬란한 민족문화의 성과들은 나열하기가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오늘날 관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세종이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함께하는’ 정치를 실천한 것이었다. 스스로가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였음에도 세종은 독단적으로 정국을 운영하지 않았다. 백성과 직접 소통하는가 하면, 인재를 폭넓게 등용하여 이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공법(貢法)이라는 토지 세법을 정할 때 17만 명에 이르는 백성들에게 직접 의견을 구했으며, 집현전을 설치하여 최고의 인재들로 하여금 국가 정책을 만들게 한 것, 천민 출신 과학자 장영실의 발탁은 세종의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 또한 김종서, 최윤덕과 같이 국방 개척의 중심인물, 황희, 맹사성, 유관, 허조와 같은 명재상, 집현전 출신 학자들의 활약에서 세종이 추구한 리더십의 성과를 잘 확인할 수가 있다. |